Lee Younghyun


Intro

초곡리 이영현


Episode.1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초곡리


Episode.2

쿠킹 호일 인형


Episode.3

재료 선정과 스토리 사이


Episode.4

일단 해보자는 주의


Episode.5

오류 초등학교 친구들


Episode.6

‘왜’라는 질문


Episode.7

이영현의 로피스: 생각을 다듬는 작업


Episode.8

다시 시작하는 시기







Intro

초곡리 이영현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가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늘 만난 이영현은 자신이 발견한 예술가의 자아를 놓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재료를 직접 써보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만든 그의 작업에는 특유의 단단함이 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가며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았다.



Episode.1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초곡리



Q.
초곡리라는 지역명을 작가명으로 쓰고 계신데, 원래 초곡리가 고향인가요?
A.
아니요, 오히려 연고는 전혀 없어요. 저는 서울이 고향이거든요. 초곡리는 부모님이 일 때문에 구미에 가게 되면서 알게된 곳이에요. 그때 저는 작업실을 찾고 있었는데, 부모님 지인 분이 초곡리에 안 쓰는 집이 있으니 편하게 작업하라고 빌려주셨어요. 학생이기도 했고, 돈이 여의치 않으니까 그 집이 제 첫 작업실이 되었죠.



Q.
원래 서울에 사셨던 거네요. 대학생 때부터 작업을 해오신 건가요?
A.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산업정보디자인이요. 디자인 조형학부라서 1학년 때는 조형과 디자인을 모두 배우고 2학년 때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어요. 저는 디자인을 선택했고 UX랑 UI 관련 공부를 주로 했죠. 그러다가 3학년 때 수업에서 했던 프로젝트로 ‘레드닷 어워드’라는 상을 받았는데,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려고 하니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제 작업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데 회의감을 느꼈어요. 바로 휴학을 했고, 디자인으로만 풀어냈던 작업을 실체화해보고 싶어서 작업실을 알아보다가 초곡리로 내려가게 됐어요.


Q.
이미지를 현실에 있는 어떤 물체로 구현하는 작업인가요?
A.
맞아요. 글이나 이미지는 결국 웹상에만 남아 있잖아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정말 손으로 뭐라도 만들어보자, 하고 내려간 거예요. 작업실을 구하면서 이름도 고민을 좀 했는데 (웃음) 이영현이라는 이름은 임팩트가 크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문득 보게 된 마을 이정표의 ‘초곡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결정했어요.




Episode.2  쿠킹 호일 인형



Q.
디자인 전공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A.
진지하게 고민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중학생이 되니까 저만 빼고 다들 꿈이 하나씩 있더라고요. 나는 뭘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으니까 미술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고요.


Q.
어렸을 때는 어떤 걸 주로 만드셨어요?
A.
유치원 때부터 혼자 쿠킹 호일로 인형을 만들어서 갖고 놀았어요. 그걸 거의 중학교 때까지 했고요. (웃음)


Q.
만드는 작업에서 이미지 작업으로, 이미지 작업에서 다시 만드는 작업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겠네요.
A.
맞아요. 지금 하는 작업이 저에게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픽 작업을 싫어해서 도망친 것 같단 생각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Episode.3  재료 선정과 스토리 사이



Q.
영현 님의 작업을 모아 보니 재료를 되게 다양하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작업하실 때 재료를 먼저 선정하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A.
작업으로 풀어보고 싶은 스토리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재료를 선정하는 편이에요. 물론 가끔은 역으로 재료를 먼저 선정해서 스토리를 푸는 경우도 있고요. <Mass>는 덩어리가 가진 무게감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고 그 다음에 재료를 선정한 작업이에요. 겉으로는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가벼운, 무게의 반전을 주고 싶었죠. 그래서 가벼운 스티로폼을 조각한 다음에 그 위에 유리 섬유를 덧대서 강도를 높였어요.

<Lava Vase>는 재료를 먼저 선정했던 작업이에요. 평소에도 목적 없이 재료를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데, 발포 우레탄이 이름처럼 발포가 되면서 단단하게 굳는 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이렇게 저렇게 써보면서 실험을 했어요. 조금씩 쌓다 보니까 마치 용암이 흐른 모습처럼 보이더라고요. 이런 형태의 꽃병에 꽃이 꽂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용암에서는 꽃이 자랄 수 없잖아요. 식물과 발포 우레탄이라는 화학 물질의 대비도 재밌고요. 그런 이질감을 표현하려고 한 작업이에요.







Episode.4  일단 해보자는 주의



Q.
발포 우레탄, 유리 섬유, frp 등등 모두 생소한 재료인데요. 이런 재료는 어디서 발견하시는지 궁금해요.
A.
오브제나 가구 제작에는 잘 안 쓰이는 재료죠. 주로 화공약품집에 다 있어요. 을지로에도 많고요. 가끔 재료 보러 을지로에 놀러가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둘러보다가 주문하기도 해요.



Q.
잘 모르는 재료를 사용하다 보면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A.
맞아요. 잘 몰라도 일단 한번 해보자는 주의에요. (웃음) 그래서 결과물의 형태를 명확하게 정해 놓고 작업하지 않아요. 명확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똑같이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이젠 얼추 이 재료를 쓰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감이 생겨서, 상황에 맞춰가는 편이에요.



Q.
요즘 제일 관심 있는 재료는 어떤 건가요?
A.
요즘은 나무에 관심이 많아요. 다른 재료를 안 쓰진 않겠지만, 목공이 제일 재밌어서 여기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워낙 많이 쓰이는 재료라 일반적으로 쓰는 방식이 있는데, 이미 정해져 있는 틀에서 살짝씩 벗어나는 게 재밌더라고요. 제 방식대로 표현하는 맛이 있어요.






Episode.5  오류 초등학교 친구들



Q.
지금 작업실은 어떻게 구하게 된 건가요?
A.
초곡리 작업실을 구한 게 2019년인데, 1년 뒤에 복학하게 됐어요. 초반에는 서울과 초곡리를 오가면서 작업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학교를 다니다 보니 초곡리를 가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했어요. 여기서 작업한 지도 1년 조금 넘었죠.


Q.
작업실 입구에 ‘오류 엘리먼츠’라고 쓰여 있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A.
작업실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거든요. 그때 살던 동네가 오류동이에요. 처음 작업실을 찾던 것도 오류동 쪽이었는데, 매물도 없고 마음에 드는 곳이 안 나와서 문래동까지 넓히게 됐어요.

셋이 작업실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다 달랐어요. 저는 큰 작업을 할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한 명은 무거운 작업을 하다 보니 차가 드나들기 편한 곳이어야 했어요. 다른 한 명은 쾌적한 화장실을 원했고요. (웃음) 원래는 문래동에 있는 다른 작업실을 계약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오래된 부동산을 들어갔더니 여기를 소개해 주셨어요.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했죠.



Q.
작업실을 공유해서 쓰는 건 어떠세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A.
그래도 장점이 더 많아요. 우선 심심하지 않고, 항상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점? (웃음) 혼자 작업하다 보면 힘들고 짜증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은데, 같이 작업하고 놀다 보면 그냥 재밌어요. 지금 하는 작업이 크다 보니 도움도 많이 받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서로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도 좋고요.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Episode.6  ‘왜’라는 질문



Q.
작업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A.
산업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가, ‘왜’라는 질문을 자주 생각해요. 학교에서 디자인은 ‘왜’라고 배웠거든요. 그 질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작업의 스토리도 왜 이것을 만들게 됐나,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게 돼요. 왜 이런 소재고, 왜 이런 색감인지…
그런데 최근에는 제가 ‘왜’라는 질문에 갇혀서 작업이 더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테일을 완성하는 부분에선 필요한 물음이지만 가끔은 좀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왜’라는 질문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냥 그때의 감정과 마음을 생각해보기도 해요. 하고 싶은 작업 방향도 다시 생각해보고요.



Q.
지금은 그동안 하던 작업들을 재정비하는 시기로 보이네요.
A.
그런 것 같아요. 다양하게 썼던 재료들을 정리하고 목공에 집중하려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그동안 다양한 작업을 해오다 보니 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공예가, 디자이너, 설치 작가… 뭔가 소속감을 갖고 싶기도 하고요.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작업의 결을 정리해보려고 해요.




Episode.7  이영현의 로피스: 생각을 다듬는 작업



Q.
영현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연마 도구를 골랐어요. 그라인더, 샌딩기, 광택기… 다양하지만 모두 표면을 갈아서 형태를 잡는 용도예요. 최종적인 형태를 다듬는 단계라서 제일 많은 시간을 쏟는 도구기도 해요. 단순 작업이다 보니 미뤄뒀던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계속 갈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작업이 더 명확해지고, 어지러웠던 생각도 정리가 돼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내용을 형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다듬는 과정이에요.



Q.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인가요?
A.
네, 혼자 있기도 하고, 따로 정해진 일과가 없잖아요. 스스로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찾아서 정하고 작업을 하다 보니 계속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활발하고 단순했던 예전에 비해 성향도 많이 변했어요. 좀 까칠해졌나 싶기도 하고. (웃음) 예전에는 마냥 좋았던 것들도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Episode.8  다시 시작하는 시기



Q.
요즘 일상에서 중요하게 느껴지는 키워드가 있나요?
A.
‘여유’요. 그동안 작업을 긴박하게 했거든요. 학교를 다니면서 병행하거나 시간에 임박해서 만들다 보니 결과물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후회되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느긋하게 한다고 후회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을 좀 더 편하게 생각하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Q.
작업을 시작한 후로 길게 쉬어 본 적이 있었나요?
A.
지금이 그래요. 한 달 정도? 큰 작업은 잠깐 멈추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외주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작업을 안 하다 보니 심심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요즘 새 작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가제는 ‘월간 초곡리’인데, 달마다 그 달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정해서 가구를 만드는 프로젝트예요. 또 연말에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고 싶어서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이랑 준비하고 있어요.


Q.
시작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A.
계속 작업을 하는 게 목표예요. 이 분야가 어려운 부분도 많고, 수익 구조도 마땅치 않아서 되게 힘들거든요. 그래도 이 작업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여전히 만드는 일을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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