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h Suhyun


Intro

서수현


Episode.1

패션과 가구의 경계에서


Episode.2

재밌을 거라고 확신하는 일


Episode.3

옷을 입혀준다는 마음으로


Episode.4

틈. 경계에서 피어난 아름다움


Episode.5

사랑이 가득한 사람


Episode.6

서수현의 로피스: 대화, 나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


Episode.7

개인 작업자이자 아트 디렉터


Episode.8

지금처럼







Intro

서수현



다양한 색의 털실이 가득한 작업실에서 서수현을 만났다. 서수현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다가도, 작업에 대한 질문에는 금세 눈을 반짝이며 심지 있는 대답을 이어갔다. 아껴 입던 분홍색 티셔츠를 기억하는 동심과 자신의 다양한 면을 받아들일 줄 아는 강인함, 무엇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맑은 사랑을 가진 사람. 패션과 가구 사이 모호한 경계에서 누구보다 경쾌하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서수현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About. 서수현
잊힌 동심과 틈 속에서의 우연한 탄생처럼 소홀히 여겨지던 존재들을 찾아내 그 안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사람. 틀을 깨는 색채와 소재의 조합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구와 오브제를 만든다. 수우 아트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pisode.1  패션과 가구의 경계에서



Q.
패션과 가구를 함께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A.
맞아요. 저는 미술을 하나도 안 배운 채 학교에 입학한 케이스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소묘나 그림 그리는 게 무서웠어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은 연필 깎는 것부터 다르잖아요. 저는 연필깎이를 쓰고 있는데, 학원 다녔던 친구들은 연필을 슥슥 칼로 요령 좋게 깎고 있는 거예요. ‘이거 큰일 났다.’ 했죠. (웃음) 그래서 3D 조형물 제작이나 태피스트리, 양모 펠트처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업을 더 좋아했어요. 재미있기도 했고, 계속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보다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거든요.

가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단순해요. 자율 전공이라서 섬유 미술, 패션 외에도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친구랑 목공 수업을 듣게 된 거예요. 손대패질이나 톱질처럼 기초부터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과정이 많아서 많이 힘들었지만, 패션과 결합해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그때 배운 것을 기반으로 제 스타일도 찾을 수 있었고,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지게 됐죠.



Q.
어렸을 때도 손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걸 만들었나요?
A.
종이접기도 좋아했고, 종이로 우유곽을 만들거나 인형 옷 입히는 것도 좋아했어요. 공부하면서 제가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잊고 살다가 지금 다시 하고 있는 셈이죠. 어렸을 때는 되게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물 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못 했는데, 지금은 작업으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또, 제가 어렸을 때는 화려한 옷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딱 한 장 있는 핑크색 티셔츠 엄청 아껴 입고, 할머니 댁에 가면 엄마 몰래 숨겨 놓았던 미미 구두 꺼내서 신고. (웃음) 그런데 지금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작업하니까,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자기 덕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렸을 때 욕구를 눌러 놔서 지금 이렇게 몇 배로 표출되고 있는 거라고. 그때의 한풀이를 하고 있는 거죠. (웃음)




Episode.2  재밌을 거라고 확신하는 일



Q.
어떤 과정으로 가구를 만드시는지 궁금해요. 가구의 컬러나 재질, 형태는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A.
컬러는 거의 즉흥적으로 골라요. 아무래도 전공이다 보니 패션 사진을 자주 보는데, 색감이 강렬한 작품에 끌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직관적으로 작업에 쓸 색깔을 골라도 컬러감이 강한 경우가 많고요. 형태를 보면서 스케치를 해보다가, 좋은 작업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설 때 색깔과 재질을 고르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나에 딱 집중해서 완성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때가 많아요.




Q.
작업할 때 꼭 지키는 점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A.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재밌어야 한다는 거예요. 특히 저는 작업이 잘 나올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든요. 대신 만들고 싶은 걸 스케치했는데 딱 마음에 들었을 때 시작하면 끝까지 잘 가고요. 그래서 처음 마인드셋 하는 게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예요. 중간에 확신이 약해져도 이걸 극복하면 더 잘 나오겠지, 하면서 할 수는 있는데, 애초에 확신이 없으면 시작을 못하니까요. (웃음)






Episode.3  옷을 입혀준다는 마음으로



Q.
지금까지 만든 작업 중에서 특히 애정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작업을 소개해주세요.
A.
‘플럼피’ 시리즈를 좋아해요. 처음으로 플럼피를 만들었을 때 얘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름도 ‘범블비’ 같은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지었고, 가구를 만든다기보다 옷을 입혀준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죠.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더 애정을 담게 되더라고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식 키우는 느낌도 들고요. 떠나보낼 때도 속으로 ‘행복해야 해. 잘 가!’ 같은 인사를 하면서 보내요. (웃음)

‘house in the house’을 만들었을 때도 기억나요. 솜만 80kg이 넘게 들어갔는데, 집의 뼈대가 되는 합판을 자르는 것부터 솜을 채우는 일까지 뭐 하나 남의 손에 맡긴 것 없이 전부 제 손으로 직접 만들었거든요. 저는 작품과 작가 간의 유대 관계가 깊어야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에게 제작을 맡기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과정을 내가 100% 다 해보고 이해를 한 후에 맡겨야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두 달 내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온 힘을 쏟았어요. 쏟은 시간과 노력만큼 깊은 유대가 생겼고요.






Episode.4  틈. 경계에서 피어난 아름다움



Q.
첫 개인전인 ⟪HOUSE IN THE HOUSE⟫와 지금 진행 중인 개인전 <틈>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A.
⟪HOUSE IN THE HOUSE⟫에서는 저의 어린 시절과 동심에 포인트가 있었어요. 반면 이번에 진행하는 ⟪틈⟫은 지금의 저에 대한 전시예요. 저는 늘 제가 아티스트인지, 아니면 디자이너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깔끔하게 정의 내리는 걸 좋아하는데, 정작 제 포지션이 정확하지 않다는 게 되게 골칫덩이처럼 느껴졌죠. 아티스트로서 제가 100% 느낀 대로 표현하지만, 보는 사람이 그걸 똑같이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또 디자이너적인 모먼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생각뿐 아니라 스토리나 구성 같은 요소들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디자이너적 성향이 제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경계에 서 있으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그런 애매모호한 점들을 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제가 서 있는 곳이 명확한 바운더리 사이에 존재하는 ‘틈’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틈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또 우연히 식물이나 버섯이 자라나기도 하잖아요. 틈의 세계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위틈에서 자라는 해초를 모티프로 작업을 시작했죠. 원래 저는 전시를 준비할 때 디테일하게 작품을 배치하고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이번 전시는 그 자리에서 색을 배치하고 소재를 섞으면서 즉흥적으로 준비했어요. 그 자체로 틈에서 태어난 생명들인 거죠. 우연히 산발적으로 피어났지만, 모아 보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저와 제 미래의 모습을 투영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HOUSE IN THE HOUSE⟫보다 전시 규모는 작지만, 더 진중한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Episode.5  사랑이 가득한 사람



Q.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A.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는 물론이고 친구들이나, 만나는 분들을 대할 때가 가장 중요하죠. 디렉팅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그때마다 이분들 한 명, 한 명에게 늘 감사하자고, 그리고 100% 진심으로 임하자고 다짐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사실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지를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마음에 대한 중요성도 되새길 수 있고요.

궁극적으로 저는 진짜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요. 제 안에 사랑이 너무 많아서 저 자신도 정말 사랑하고, 주변으로 사랑이 흘러넘쳐서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요.




Episode.6  서수현의 로피스: 대화, 나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



Q.
수현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대화’를 골랐어요. 말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대화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거든요. 평소에도 집에 들어가면 새벽까지 엄마랑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요. 아빠가 TV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할 정도예요. (웃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감정을 나누다 보면 나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그게 또 창작으로 연결되잖아요. 제게는 어떤 도구보다도 만남과 대화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주로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시나요?
A.
누구와 대화하는지에 따라 다르긴 한데, 엄마와는 평범하게 사는 얘기를 하다가도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서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분석하고요. 그러다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인사이트를 얻기도 해요. 이제는 알맹이 없는 대화만 나누고 헤어지면 만나지 않은 것보다 더 마음이 허해요. 매번 100분 토론처럼 진지한 얘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힘 있는 대화들,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싶어요.




Episode.7  개인 작업자이자 아트 디렉터



Q.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개인 작업과 아트 디렉터의 일,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이끌어 나가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A.
사실, 정말 힘들어요. (웃음) 하나 하기도 벅찬데 두 개를 같이 하려니까 체력적으로 벅차긴 하죠. 그래도 완전히 다른 일이라 가능한 것 같아요. 디렉팅은 하나의 작업을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으쌰으쌰 해야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가끔은 그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요. 반대로 개인 작업은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면서 에너지를 안에서 채울 수 있죠. 아트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일이지만, 에너지를 얻는 방향이 달라서 오히려 상호 보완이 돼요.

그리고 제 작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정말 큰 힘이 돼요. 예전에는 자기만족으로 하는 일이니 누가 좋아해 주든 말든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제가 느낀 감정에 공감하고 응원해주실 때 큰 에너지를 얻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누군가와 연결됐다고 느낄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pisode.8  지금처럼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A.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걸 마무리한 후에는 ‘틈’ 시리즈를 이어서 작업할 예정이에요. 아트 디렉터 일도 있어서 요즘은 늘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



Q.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A.
원래는 정말 구체적으로 계획 세우는 걸 좋아했거든요. 5년 뒤에는 뭘 해야지, 10년 뒤에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트 디렉터 일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불규칙한 상황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도 모든 걸 컨트롤할 수는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작년부터는 거창한 계획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우선, 제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고요. 지금처럼 좋아하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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