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ra


Intro

미호미두 아미라


Episode.1

이주민


Episode.2

정착


Episode.3

거울의 역사


Episode.4

형태 만들기


Episode.5

은반지 그리고 미호와 미두


Episode.6

물결무늬


Episode.7

기억의 형태


Episode.8

수집가







Intro

미호미두 아미라



미호미두 아미라
타지인으로 시작해 사회적 강요 속에서도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아미라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사회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중동에서는 거울이 그림 역할을 하는 것처럼, 환경이 바뀌면 나 또한 새로운 자아와 새로운 역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미라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수집한 이야기를 펼치며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pisode.1  이주민



Q.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A.
제가 왜 장식과 기능 그 사이 어디쯤을 작업하게 되었는지부터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조금 어두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아마 외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껴본 마음일 거예요.

열 살 때 처음 한국에 왔는데, 2000년도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 제가 되게 튀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다들 생머리인데 나만 곱슬머리고, 다들 동양인인데 나만 서양인이고, 그렇게 생김새가 다른 게 싫었어요. 길을 가다 보면 “어, 외국인이다.” 하면서 가리키기도 하고, 심지어 9.11 테러 당시에는 “테러리스트다.”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스무 살이 되니 한국에서 마음대로 살 수도 없었어요. 유학생이거나, 회사에 다니거나, 항상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했거든요. 휴학이라도 하면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한 달 안에 리비아로 돌아가야 했어요. 숨이 막히더라고요. 학교는 4년제인데, 멈출 수도 없이 죽어라 다이렉트로 졸업했어요. 2014년에 미호미두를 일찍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고요.

문득 생각해보니 저는 항상 어떤 역할이 있어야 했고, 내 인생을 고민하거나 여유롭게 산 날이 없는 거예요.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그걸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제가 가구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자는 사람들이 앉기 위해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저도 그런 것 같은 거예요. 쉴 수도 없고, 항상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느낌.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생각한 게, ‘역할이 없는 오브제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는 오브제를 만들고, 기능은 쓰는 사람이 찾아내는 그런 가구.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거울도 기능과 장식 사이에 두고, 높게 달면 장식이 되기도 하고 낮게 달면 나를 비추는 기능을 하게끔 하자. 그렇게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쩌면 제 삶을 토대로 한 큰 스토리가 지금 작업이랑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Episode.2  정착



Q.
처음 한국으로 오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나요?
A.
아빠가 한국에서 박사를 하셨거든요. 원래는 5년 후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리비아에 돌아가면 적응하고 공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저랑 동생들도 가기 싫다고 했고. (웃음) 계속 헤어짐의 연속이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것 같았고, 그래서 또다시 한국을 벗어나면 정말 힘들 것 같았어요. 리비아에도, 말레이시아에도, 한국에도 친구가 없을 테니까요.

이런 게 해소된 건 미호미두를 시작하고 난 후였어요. 쉬지도 못하고,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도 없어서 쌓인 갈증을 미호미두를 통해서 풀었거든요. 기숙사에 살 때부터 방과 후에 주문 들어온 걸 작업하곤 했어요. 친구들이 방학이 되면 여행을 가는 것처럼, 저는 미호미두로 여행을 갔던 거죠.




Episode.3  거울의 역사



Q.
리비아에서의 생활이 현재 작업에 녹아든 게 있나요?
A.
거울 작업이 중동이랑 연관이 있어요. 거울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작업을 시작하게 됐거든요. 물론 그 이전에도 거울에 관심이 있었고, 졸업 전시도 거울을 주제로 하긴 했어요. 그런데 대학원 때 논문을 발표할 일이 있어서 거울의 역사를 찾아봤더니 재미있더라고요. 옛날 중동에서는 거울을 장식으로 사용했대요. 난로 위나 거실 안의 뜬금없는 장소에 두기도 했고, 그림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Q.
«미호미두 아카이브»의 전시 설명은 아미라 님이 공부하셨던 내용인가요?
A.
네. ‘거울의 역사’라는 책을 정리해서 작성했어요. 19세기에는 거울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이런 걸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니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작업하다 보면 과거에 스쳤던 것들이 하나둘씩 나오더라고요. 조각들이 모여서 작업으로 나오는 느낌이에요.




Episode.4  형태 만들기



Q.
 어떤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결과물로 만들기 전에 영감을 얻거나 드로잉을 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A.
저는 ‘무슨 작업을 하지?’ 하고 드로잉 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다가, 운전하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거든요. 그러면 그게 탄생할 수 있는 곳에서 재료를 찾고, 또 그 재료에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건물을 보다가 ‘어, 저 쉐입이 멋있다.’ 하고 시작하거나, 유리공장에 재료를 가지러 갔다가 새로운 재료를 보고 ‘이걸로 뭘 만들면 재미있겠다.’ 그런 식이에요. 그래서 대학교 때는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먼저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그걸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라는 게 대학인데, 저는 거꾸로 전시될 모습을 상상하고 처음을 찾는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레퍼런스나 드로잉북이 많지 않아요.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이는 정도예요. 디자이너라기에는 애매하고, 에디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죠.



Q.
그러면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완성된 형태를 상상하고 재료를 찾으면 바로 만드시는 거네요?
A.
네. 아니면 재료를 보고 바로 만들기도 해요. 그림도 그냥 메모장에 손으로 그리거나, 아이패드에 그려요. (웃음) 심지어 블루거울은 2월 6일에 그린 게 다예요. 2021년 1월 1일부터 반달 쿠션거울을 판매했는데, 2019년 12월 9일에 그린 그림이에요. 여기서 시작한 거예요.


Q.
수치를 계산해서 구상하는 게 아니라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드시는 거군요.
A.
네. 그래서 인터뷰할 때 자료나 드로잉을 보여 달라고 하시면 난감해요. 솔직히 저도 도전은 해봤거든요. 다들 이렇게 하던데, 나도 한번 드로잉해서 작업해 보자. 그랬는데 저랑은 안 어울리는 거예요. 앉아서 하면 생각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Q.
금속, 유리를 주로 쓰시는데, 작업하다 보면 다른 머테리얼도 자극이 올 때가 있겠네요.
A.
네. 이번 미호미두 아카이브에서는 유리와 패브릭을 썼다면, 다음에는 금속이랑 유리를 섞어보고 싶어요. 또 아크릴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도자기로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써보고 싶기는 한데, 가마도 있어야 하고 제약이 많아서 차라리 도자 하는 사람과 협업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진짜 이것저것 많아요. (웃음)




Episode.5  은반지 그리고 미호와 미두



Q.
로피스로 반지를 고르셨다고 들었어요. 이 반지는 어떤 반지인가요?
A.
이 반지는 ‘볼드한 반지를 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나’스러울까?’ 하고 생각하다가 만들었어요.


Q.
이 반지가 아미라의 로피스인거네요.
A.
저는 항상 뭔가 만들 때 내가 갖고 싶어서, 내가 필요해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반지를 자세히 보시면 미호미두를 이집트나 고대의 상형문자처럼 드로잉으로 해석해 새겼거든요. 미호랑 미두는 제가 키우는 고양이인데, 알파벳을 잘 보시면 MIHOMIDU의 D는 고양이 눈처럼 그리고, H는 고양이와 관련 있는 나비를 형상화했어요.


Q.
미호랑 미두는 지금도 키우고 계세요?
A.
네. 중학교 때부터 키운 미두는 13살이고, 2013년부터 키운 미호는 9살이에요.



Q.
브랜드에 미호와 미두가 반영됐군요. 고양이 사진도 보고 싶어요.
A.
진짜 재미있는 건 미호미두로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라는 거예요. 제 이름이 ‘미라’니까 다들 ‘미’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pisode.6  물결무늬



Q.
미래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A.
하와이랑 모로코요. 제가 물을 좋아해요. 한국에서도 호수를 보면 너무 설레서, 전생에 물고기였나 싶을 정도로요.


Q.
리비아가 지중해 근처잖아요. 그런 영향이 있을까요?
A.
리비아에서는 바닷가 근처에 살았어요. 11-12월에 리비아에 다녀왔거든요. 한국에 열 살 때 오고 12년 만에 리비아에 간 거라서 몰랐는데, 우리 집이 바다 바로 앞이더라고요. (웃음) 태어난 곳은 또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인데, 거기는 사계절이 여름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름과 바다를 좋아하나 봐요. 왜, 아이들은 다섯 살 전에 보고 느낀 걸 무의식적으로 흡수해서 성격이 정해진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Q.
물결도 곡선 형태잖아요. 곡선을 좋아하시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을까요?
A.
맞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만든 오브제들에 물결이 많더라고요. 미호미두도 물결 반지로 시작했고, 나이프도 그렇고, 대형 벨트 버클 오브제도, U자 거울도 여러 개를 나란히 두면 물결이 생기고요. 나로 인해 탄생한 작업물들이 나도 모르게 한 컬렉션을 이룬 느낌이에요.




Episode.7  기억의 형태



Q.
이번에 캐비넷클럽에서 진행한 전시는 어떤 내용인가요?
A.
이번 ‘캐비넷클럽’과의 전시에 오브제가 많지는 않지만, 기능이 없는 거울이 어떤 역할일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의자 다리 아래 거울을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능을 없애버림으로써 ‘왜 나는 항상 직업이 있어야 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왜 거울은 항상 누군가를 비춰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죠. 이런 스토리가 전달되면 재미있을 거예요.


Q.
저처럼 제품은 제품으로, 기능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좋겠어요.
A.
맞아요. 이번 전시는 미호미두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거울에 초점을 두고 작업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히스토리는 말하지 않았거든요.


Q.
지금까지는 경험을 아카이브해서 미호미두를 전개했잖아요. 향후에는 어떤 걸 아카이브하고 싶으세요?
A.
미호미두 아카이브전으로 첫 개인전을 한다는 게 자랑스럽고 뜻깊어서, 앞으로도 이런 제 기록을 이어가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얇은 책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사용한 도구들을 하나하나 찍고, 손글씨로 설명을 써서요.



Q.
로피스 외에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 있나요?
A.
미호미두 아카이브 전시에도 많아요. 사진도 같이 전시하고 있는데, 작업실 오픈할 때 친구들이 축하하면서 찍어준 것도 있고요. 이것도 제가 아끼는 건데, 작업하면서 은을 자르면 은가루가 떨어져요. 이걸 2014년부터 7년 동안 모아서 은 덩어리를 만들었어요. 오브제 이름도 ‘몇 년 동안 은 작업을 하면서 모은 은가루로 만든 은 덩어리’예요. 되게 무거워요. 금액으로 환산하면 9만 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요즘에 제가 재미있어 하는 건 사람들이 열쇠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열쇠고리는 계속 사용하는 거예요. 귀엽다면서요. 그래서 열쇠 모양 열쇠고리를 만들었어요. 이번 전시 장소가 ‘캐비넷클럽’이기도 해서 ‘Welcome to __club’이라고 각인해서, 이게 사람들에게 진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작업의 연장선으로는 손 모양 손거울이 있는데 6월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이런 작업이 재미있어요. 이름이랑, 모양이랑 연결해서 만드는 작업.




Episode.8  수집가



Q.
전시를 둘러보니까 예전에 사용하셨던 도구들이 많더라고요. 거울을 뒤집어서 전시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A.
여기에는 입시 때 사용하던 몽당연필도 있어요. 10년도 넘은 건데, 버리지 않았다기보단 화구통에 쌓여 있던 걸 발견한 거예요. 미호미두 초반에는 패키지를 갖출 능력이 되지 않아서, 알파문고에서 맞춘 고무도장에 쓰다 남은 나무를 붙여서 찍어 보냈거든요. 여기 나오는 소리도 작업실에서 녹음했어요. 비닐 소리, 테이프 뜯는 소리… 중간에 첼로 소리는 첼로 하는 친구와 사운드 콜라보를 한 거예요.

거울을 뒤집어서 전시한 이유는, 보통 작품 앞모습을 위주로 보여주는 전시랑 다르게 뒷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여기 이 옥돌은 대학교 졸업 전시 때 작업했던 작품 일부인데, 추 역할을 하는 돌을 잡아당겨서 거울 위치를 다르게 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은 덩어리는 그 자체로 미호미두 같죠. 가루를 모아서 무언가가 되었잖아요. 미호미두도 목적 없이 종이를 한 장, 한 장 쌓는 기분으로 작업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까. (웃음)

최근에 제 전생이 궁금해서 별자리 사주를 봤는데 제가 수집가였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정보랑 물건을 수집했다나. 이번 생에 태어난 건 그때 수집했던 걸 만들고 보여주기 위해서래요.

사실 이번 <MIHOMIDU ARCHIVE>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사람들은 뭔가 ‘빵’ 이렇게 큰 거, 사진 찍을 만한 임팩트가 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저는 이야기책을 펼쳐놓듯 자잘한 것을 늘어뜨려 놓았기 때문에 집중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오브제를 들여다보고 또 들어보기도 하면서, 오래 머물다 가야 하는 전시인데도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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