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aria


Intro

이마리아


Episode.1

집을 나가고 싶어서 영국으로 갔어요.


Episode.2

존재감 없는 외국인


Episode.3

미술 심리 치료


Episode.4

그림체의 변화


Episode.5

이마리아의 로피스: 작업 노트, 심연에 있는 생각


Episode.6

와인: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Episode.7

조금 더 자유롭게


Episode.8

평안을 담은 그림







Intro

이마리아



그림과 물감, 작은 오브제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며 내면의 평안을 찾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에 공존하는 청량함과 따뜻함은 마리아가 찾은 자유와 평안에서 온 것일지도. 낯선 환경에서도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향할 줄 아는 사람, 매번 처음 보는 와인을 마시고 기록해둔다는 마리아와의 대화에서 새로움을 대하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Episode.1  집을 나가고 싶어서 영국으로 갔어요.



Q.
영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들었어요.
A.
어릴 때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하지 말라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춘기에, 예민한 중학생이라 집을 나가고 싶단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런데 마침 이모부 학위 때문에 영국에 계시던 이모가 제가 놀러오면 좋겠다고 얘기를 꺼내신 거예요. 이모랑 각별했기도 했고, 항상 집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그렇게 아주 멀리 가게 됐어요, 가출을. (웃음)

그런데 막상 영국에서 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일단 영어를 잘 못했고, 낯을 많이 가려서 친구도 사귀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열심히 그렸어요. 다른 과목에 비해 미술은 말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제 그림을 발견해주시면서 많이 나아졌어요. 선생님이 자주 칭찬해 주시니까 아이들도 제게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요. 미대에 진학하게 된 건 그 선생님 도움이 컸어요.






Episode.2  존재감 없는 외국인



Q.
적응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A.
매일 울었어요. 매일매일 울고 또 울고. 단어를 잘 모르니까 생활도 공부도 너무 어려웠어요. 낯을 너무 가리는 탓에 친구들과 못 어울리는 것도, 이런 마음을 말할 사람이 없는 것도 힘들었고요. 고등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었는데, 백인 중심의 학교라 인종차별도 심했어요. 버스 뒷자리에서 뭘 던진다거나 하는 일도 되게 많았고요. 지금이야 한국이 유명해졌지만 그때는 동양인이면 다 중국인으로 인식하던 때라… 존재감 없는 외국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나의 존재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어느 순간 부터는 내가 영어로 생각하고 있는지 한국어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인지 그때 그린 그림은 어두운 분위기가 많아요. 답답한 마음을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해소했죠.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건 다시 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였어요. 전에는 사람을 믿거나 마음을 주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친구 관계가 중요한 시기에 영국에 갔잖아요.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그대로인데 저는 그곳에 없는 사람이 된 거예요.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에게는 어느새 잊히고 있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그러다 감정이 무뎌지면서 누구든 적당히 친해지면 된다는 식으로 변했고요. 그러다가 다시 사람들을 사귀면서 관계가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사람이나 관계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죠.








Episode.3  미술 심리 치료



Q.
미술 심리 치료는 어떻게 공부하게 되셨나요?
A.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궁금해졌어요. 나를 알고 싶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 그림이 되게 어두웠거든요. 그렇게 그려야 뭔가 해소가 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미술 심리 치료 전공을 알아봤는데 영국에서는 임상 경험이 있어야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죠.

배우길 잘한 것 같아요. 수업을 하거나 수강생 분들을 대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되고요. 원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미술 치료에서는 제가 치료사니까 말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웃음) 계속 연습하다보니 처음 보는 분들한테 말 거는 것에도 익숙해졌어요. 정신과에서 실습을 하다보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해의 폭도 넓어졌죠.






Episode.4  그림체의 변화



Q.
그림 스타일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A.
처음에는 색연필로 많이 그렸어요. 아름답지만 어떤 감정인지는 말해주지 않는 묘한 느낌의 얼굴을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여자의 얼굴로 봤지만 저에게는 엄청 답답해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생각이 많았던 시기라 저를 많이 투영했던 것 같아요. 이후엔 수채화로 라인 드로잉을 자주 했어요. 수채화는 팔레트에 붓과 물만 있으면 그릴 수 있거든요. 물방울이 퍼지면서 생기는 무늬도 좋아했고요.

지금의 스타일이 된 건 2018년 쯤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온 후예요. 여행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컸거든요. 광활한 자연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처음 느낀 감각이었죠. 그 경험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제가 그 동안 봐왔던 장면과는 다른 색감이었고, 기존에 쓰던 수채화보다는 무거운 느낌을 주고 싶어서 아크릴 물감을 꺼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아리조나 시리즈 작업이에요.







Episode.5  이마리아의 로피스: 작업 노트, 심연에 있는 생각



Q.
마리아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이 노트예요. 일기라고나 할까요? 어제 뭐 했고, 오늘 뭐 했고… 그런 걸 기록하는 일기는 아니고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심연에 있는 것, 스케치, 아이디어 같은 것을 기록해요. 심란하거나 불안한 생각이 들 때 (웃음) 막 쓰고 그리다 보면 그런 감정들을 마음속에서 내보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Q.
노트에 적은 내용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건가요?
A.
그대로 다 표현하는 건 아니지만 영향을 주긴 해요. 불안하고 힘든 감정이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순화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위로가 돼요. 최근 작가 노트에 쓴 메모도 평안과 관련된 내용이 많고요.




Episode.6  와인: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Q.
와인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A.
맞아요. 제 성향이랑 잘 맞더라고요. 저는 반복적이거나 똑같은 걸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 한 가지 그림체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좀 힘들어요. 계속 새로운 걸 하고 싶고 호기심도 많고요. 예전에는 싫증이 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그림으로 풀었는데, 내추럴 와인을 접하게 되면서 요즘은 와인으로 해소해요. 매번 새로운 맛을 시도하는 게 재밌어요. 내추럴 와인은 종류도 많고, 맛과 향이 다양해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좋아요. 예전에 갔던 곳 말고 새로운 곳, 내가 먹어본 거 말고 새로운 거. 그렇게 방문한 곳들을 @where.ma.goes 계정에 수집하고 있어요.



Q.
와인으로 프로젝트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A.
너무 하고 싶어요. 제 그림이 들어간 와인 레이블을 만드는 게 제 소원이거든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와인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시도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와인에 관련된 메모와 그림을 담아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내추럴 와인을 마실 때마다 메모를 해두는 편인데, 그렇게 기록한 메모를 모아보니 꽤 많아서 책으로 엮어보려고요. 와인 뿐만 아니라 F&B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요. 기회가 된다면 와인이나 F&B 관련해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Episode.7  조금 더 자유롭게



Q.
풍경을 자주 그리시는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있나요? 일상에서 자주 보는 장면도 좋고요.
A.
노을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도 노을 지는 걸 일부러 보러 가는 편이에요. 평소에는 여기(작업실)에 제일 오래 있잖아요. 여기 옥상이 노을이 정말 잘 보여서, 해 질 때 나와서 종종 사진을 찍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원래는 여행을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여행길에서 본 풍경에 매료돼서 그렸던 작업이 많아요.



Q.
앞으로도 계속 장면과 관련된 작업을 하실 예정인가요?
A.
풍경 작업은 계속 할 것 같아요. 지금도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하지만 작업 방향은 계속 고민하는 중이에요. 지금 제 그림은 보자마자 풍경인 걸 바로 알 수 있잖아요. 그것보다 더 추상적으로 그리고 싶어요. 지금보다는 더 풀어 헤친 느낌으로요. 그리고 예전에는 자연만 있는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요즘에는 풍경 속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요.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이걸 어떻게 표현할 지 연구하는 중이에요.






Episode.8  평안을 담은 그림



Q.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A.
‘아리조나 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게 된 시작점 같은 작업이라 애정이 많이 가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렸던 것 같아요.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과 그 시간에 대한 추억, 감정이 그림에 담겨있죠.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보여요.



Q.
작품에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을 많이 담는 편인가 봐요?
A.
네. 생각과 불안이 많은 편인데 그림을 그리면 조금씩 해소가 돼요. 저의 가장 큰 주제는 평안이에요. 그림을 그리면서 저의 평안을 바라기도 하고, 보는 사람도 평안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바라는 점도 좋고요.
A.
아무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의 저를 미술 선생님이 발견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처럼, 저도 타인에게 어떤 연결점으로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전문적인 미술 치료나 상담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요. 수강생 분들 중에는 처음 오시는 분보다 계속 오시는 분이 더 많아요. 오셔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분의 삶이나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러면서 더 친밀해지기도 하죠.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멋있는 그림을 그리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제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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