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Hyeji


Intro

아워순환, 점 김혜지


Episode.1

생일: 기획에 재미를 느끼게 된 계기


Episode.2

순환하는 옷, 아워순환


Episode.3

제주도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Episode.4

강아지 바리


Episode.5

제주에서의 하루 일과


Episode.6

김혜지의 로피스: 동그랗고 빛나는 자연, 아름다움을 전하는 도구


Episode.7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


Episode.8

살림꾼, 초보 농부, 기획자, 제작자







Intro

아워순환, 점 김혜지



'점' 스토어 오픈일, 공들여 준비한 공간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김혜지의 얼굴에는 막 출발선에 선 사람의 떨림과 설렘이 가득했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된 순간부터 제주에 살게 된 이유까지 들으면서 맑은 에너지를 한가득 얻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할 때 생기는 힘의 가치를 믿는 사람, 주변까지 행복으로 물들게 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 지금의 김혜지가 되기까지 어떤 순간과 존재들이 있었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About. 아워순환
자연에 대한 기억으로 색, 형태를 구성하여 가장 익숙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패션 브랜드. 오래도록 편안하며, 지구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것을 지향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순환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Episode.1  생일: 기획에 재미를 느끼게 된 계기



Q.
최근에 생일을 보내셨다고 들었어요.
A.
맞아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생일 주간을 즐겁게 보내는 편이에요. 사실 생일은 핑계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떠들고, 게임도 하는 거죠.



Q.
혜지 님에게 생일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A.
모두 '생일'에 대한 환상이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돌잔치부터 유치원에서 하는 월별 생일잔치를 거쳐, 초등학생이 되면 생일 파티 초대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초 대 장. 00야, 내 생일 파티에 와줘.'라고 쓰면서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획자가 되는 것 같아요. 기대와 다른 상황이 와서 난감하거나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생일이니까!' 하고 즐겨버리는 게 또 파티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처음 기획에 재미를 느꼈던 것도 친한 언니의 생일 파티를 준비할 때였어요. 일 때문에 너무 바쁜데 사람들을 모아서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대뜸 해보겠다고 나섰죠. 친구네 옥상을 빌리고, 테이블과 의자, 온갖 장식, 전구, 소품, 접시,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준비해서 직접 만든 초대장으로 연락을 돌렸어요. 언니와 손님들 모두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욕심에 정말 열심히 했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죠. 그게 계기가 되어서 나중에 플리마켓 브랜드나 파티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비슷한 행사나 프로그램 제의가 들어오면 종종 하고 있고요.




Episode.2  순환하는 옷, 아워순환



Q.
학생 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요. 지금과 비슷했나요?
A.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다만 그때는 좀 더 성급하고, 표현도 다듬어지지 않았죠. 되돌아보면 시끄럽고 유난스러웠다는 생각도 하고요. (웃음)



Q.
어렸을 적 꿈은 뭐였나요?
A.
생뚱맞게도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한의사가 꿈이었어요. 드라마 허준을 보고 열심히 한자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요. (웃음) 그러다 TV에서 앙드레 김의 패션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규모가 크기도 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오뜨꾸뛰르 패션쇼를 본 순간이었거든요. 그때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어요. 유치원 때부터 매일 다른 머리를 하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멋 부리기’ 고집이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거예요.

그 후로는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는 시간을 보냈어요. 학생 때는 돈이 없으니까 옷을 새로 사기보다는 할머니와 부모님 옷장에서 젊은 시절 옷들을 꺼내 제 마음대로 입고 다니는 편이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옷장에서 살아남은 옷’의 매력을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에 관심이 많아졌고요. ‘아워순환’이라는 브랜드 이름처럼 옷 또한 계속해서 순환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반 패션 브랜드처럼 매년, 매 시즌마다 새 제품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옷의 소비 주기가 길어지길 바라면서 하나의 제품을 느리지만 꾸준히 제작하고 있어요.




Episode.3  제주도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Q.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제주도로 내려가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A.
2020년에 뉴질랜드 워홀 계획이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고, 친구들과 무계획 제주도 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부랴부랴 짐만 풀어놓고 가까운 바다로 뛰어드는데 마침 해가 저물고 있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붉게 물드는데 너무 아름답고 많은 감정이 밀려와서 한참을 바라만 봤어요. 그렇게 물에 잠긴 채로 해와 눈높이를 마주하는 순간  "그냥 여기 살면 안 되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제주에 살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서 노을이 멋진 제주 서쪽 바닷가 근처에서 집을 바로 알아봤고, 정말 한 달 만에 후다닥 이사를 했죠. (웃음) ‘아워순환’과 ‘바리(강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내가 행복해야 둘 다 더 잘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Episode.4  강아지 바리



Q.
바리는 언제부터 가족으로 지냈나요? 혼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A.
태어났을 때부터 큰 강아지들과 함께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나도 친숙한 존재지만, 혼자서는 책임지기 힘들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입양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친구가 구조한 생후 3개월 된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게 됐는데,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저를 잘 따르고 의지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데려온 지 하루만에 바리를 바로 입양했어요.

제주도에 온 첫날, 사람도 차도 없는 집 앞 포구에서 바리의 목줄을 풀어줬는데 바리가 정말 지치지도 않고 계속 뛰어노는 거예요. 바리가 원래 빠르고 뛰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처음으로 바리의 속도와 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순간 너무 미안하고 울컥했어요. 제주에 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죠.

바리가 가장 건강하고 활발한 나이에 제주도에서 함께 지낸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스스로도 뿌듯해요. 여기는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사람이나 차가 없는 들판이 많아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좋거든요. 바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쭉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요.






Episode.5  제주에서의 하루 일과



Q.
요즘 하루 일과는 어때요?
A.
제가 있는 지역은 택배 수거 시간이 빠른 편이라, 잠들기 전에 업무를 끝내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침이 여유로워요.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바리와 동네를 산책할 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와 업무를 시작하죠. 이제는 점 스토어를 시작했으니 하루 일과가 달라질 것 같아요. 최근에는 테니스와 복싱을 시작했어요. 건강한 습관을 늘리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땀 흘리면서 움직이는 동안에는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웃음)



Q.
제주에서의 하루라니, 같은 하루라도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아요.
A.
맞아요. 출퇴근이 반복되는 루틴이라도 자연 배경이 매번 달라지니까 행복감이 더 자주, 다양하게 와요. 친근한 곳을 떠나 또 한 번의 독립이라 처음에는 친구나 가족, 사람에 대한 외로움을 많이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제주에서 또 다른 따뜻한 인연들을 맺고, 함께 자연의 존재감 안에서 더 넓은 폭의 관계와 감정을 배우고 있어요. 바리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은 것도 큰 행복이에요.




Episode.6  김혜지의 로피스: 동그랗고 빛나는 자연, 아름다움을 전하는 도구



Q.
혜지 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예전부터 동그랗고 빛나는 것에 집착했어요.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동그란 형태를 고를 정도로요. 동그란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는 수영할 때 물속에서 뽀글뽀글 피어오르는 기포 방울이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여름에는 틈만 나면 바다로 가서 수영하려고 해요.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의 패턴과 빛, 바닷속 장면들이 너무 아름답거든요.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고집스럽게 사진으로 남겨놓을 정도예요.



Q.
그래서인지 점 스토어에는 환경을 고려한 큐레이션이 돋보여요.
A.
맞아요. 우리 삶에서의 지속가능성과 자연에 대해 관심과 고민이 많아요. 무언가를 제작하다 보면 낭비와 소모에 대한 책임감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런 모순 때문에 자책하며 한동안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워순환에 이어 점 스토어를 시작하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라고 다짐했고 다양한 방면으로 시도해보고 있어요. 불편하고 느리고 돌아가야 하는 수고스러운 방식이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좋아지는 부분을 생각하면 오히려 벅차요. 계속해나가야겠다는 에너지도 생기고요.




Episode.7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



Q.
기획부터 아워순환, 점 스토어를 시작하기까지, 혜지 님이 계속 시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사람'이요. 저는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고 믿고, 함께했을 때 생기는 힘과 감정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들도 많고요. 아워순환에서 만드는 제품들은 다른 사람들과 취향을 기반으로 하는 저만의 소통방식이에요. 단순히 원하는 것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취향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계속해서 저를 나아가게 만들죠. 마찬가지로 점 스토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직접 마주하고, 경험과 취향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기획했어요.






Episode.8  살림꾼, 초보 농부, 기획자, 제작자



Q.
2023년에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A.
점 스토어도 꾸준히 운영하고, 아워순환도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간이 생기니까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웃음) 자연, 사람,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와 팝업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탐구하는 지점이 같거나, 추구하는 가치가 연결되는 브랜드나 작가님을 찾아서 매달 새로운 공간으로 기획하는 게 목표예요. 우리 생활에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클래스도 계획하고 있고요.



Q.
혜지 님의 5년 후, 10년 후가 기대되네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모습이 있나요?
A.
저도 제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웃음) 바라는 모습이라면… 점 스토어와 아워순환을 계속 잘 운영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주도에서 마당 있는 작은 구옥을 고쳐가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도 있고요. 좀 더 능숙한 살림꾼이면서 작은 밭의 초보 농부, 유연한 기획자이자 단단한 제작자가 되어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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