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nc
Intro
헤르시 엄익준
Episode.1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Episode.2
헤르시의 로피스: 잔, 대화의 시작
Episode.3
Everybody must have a fantasy
Episode.4
이야기를 쓰는 사람
Episode.5
삶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Intro
헤르시
자기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헤르시는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중해를 닮은 그림부터 헤르시가 만든 잔과 접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와인 바와 레스토랑까지.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심한 선과 강렬한 색감 위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헤르시를 만났다.
About. 헤르시
다양한 세대를 거쳐 내려온 태양의 이야기를 수집해 소개하는 사람. 태양의 기운이 가득한 사물에 관심이 많다.
Episode.1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Q.
헤르시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A.
‘헤르시(hernc)’는 ‘he realized nothing concrete’라는 문장을 줄인 말이에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잖아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부족한 점은 생기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완벽함에 대한 욕심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완벽함보다 지금의 만족감에 초점을 두는 거죠. 많은 생각과 계획을 통해 무언가를 결론짓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싶고, 나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일을 가볍게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래야만 이게 맞는지 아닌지, 내가 잘 하고 있고 계속 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 시도를 통해 나를 다듬어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Q.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나를 다듬고 있는지 궁금해요.
A.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할 때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도 그런 상상을 제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페인팅이나 도자기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로 제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꼭 말을 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Episode.2 헤르시의 로피스: 잔, 대화의 시작
Q.
헤르시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제 로피스는 잔이에요. 대화는 무언가를 마시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커피를 마시면서, 와인을 마시면서, 소주를 마시면서… 평소 무언가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라 가장 먼저 잔에 주목하게 됐어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무엇을 담으면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며 관심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 덕분에 헤르시의 시그니처가 되기도 했고요.
Q.
‘태양을 마신다’가 헤르시의 메인 테마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헤르시로 활동하면서 꼭 지키려고 하는 부분이 있나요?
A.
상상을 펼치고 이것저것 연결하고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실제로 지금 태양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고, 등장인물과 사물의 이름도 조금씩 정리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제와 에피소드에 엇나가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너무 개연성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Q.
그렇다면 활동이 아닌,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A.
하나에 깊이 빠지려고 하지 않아요. 시야가 좁아지는 걸 걱정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컵을 만드는 데 너무 몰두하면 그 외의 것에 관심이 줄어들고,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떨어질 수 있잖아요.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관심사와 이야기에 대해 상상하고, 대화하는 거죠.
Episode.3 Everybody must have a fantasy
Q.
헤르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A.
앤디 워홀의 ‘모든 사람은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Everybody must have a fantasy)’라는 말을 좋아해요. 제가 가진 판타지의 중심은 태양이에요. 처음에는 ‘아무도 태양을 마주 볼 수 없는데, 태양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태양을 담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태양을 담기 위한 도구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확장됐고요. 앞으로도 제 판타지를 각 이야기에 맞는 방식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Q.
작년 여름, 세몰리나 클럽(와인 바)에서 했던 팝업이 생각나네요.
A.
처음부터 전시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와인을 좋아하는데, 와인은 내내 햇볕을 쬐어서 만들어지는 태양의 산물이잖아요. 와인과 빛, 태양, 자연을 결합한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보거나 만지기만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제가 만든 잔으로 와인을 마시는 게 좋았고, 그런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팝업 와인 바 형태를 차용해서 ‘잠깐 열어요. 놀러 오세요.’ 하는 느낌으로 진행하게 됐죠. 전시라기엔 아직 전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방식에 한정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화를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pisode.4 이야기를 쓰는 사람
Q.
요즘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려요.
A.
단편소설집을 쓰면서 인물과 사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듬고 있어요.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으면서 역사 공부도 하고 있고요. 어릴 때부터 봐왔던 이야기들인데 지금 다시 보니까 흥미로운 점이 많더라고요. 어떤 이야기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 이야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도자기를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쓰거나 공부를 하는 게 더 즐거워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있어서, 올해에는 더 꿈같은 이야기들로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5년, 10년 후의 헤르시가 기대가 되네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나요?
A.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면 그 안의 공간과 사람들을 현실화해보고 싶어요. 전시나 팝업스토어의 형태를 차용해서 소개하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비단 공예, 회화 작업 뿐 아니라 공간, 패션, 가구,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소개할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써내려 가는 이야기와 연계해서 다양한 직업을 가져보고 싶기도 하고, 헤르시의 감각을 좋아해 주시는 팀들과 협업도 해보고 싶네요.
헤르시 이전에는 과연 해도 되는지 고민하던 것들이 되게 많았는데, 작업을 통해 많은 상상을 하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고, 진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헤르시 이전에는 과연 해도 되는지 고민하던 것들이 되게 많았는데, 작업을 통해 많은 상상을 하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고, 진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pisode.5 삶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Q.
주로 어떤 것에서 영향을 받나요?
A.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고 있어요. 사실 너무 많이 받아서 탈이죠. (웃음) 특히 바다를 좋아해요. 바다의 기운이나 색감, 바닷가에만 있는 건축물… 잘 못 키우긴 하지만 식물도 좋아하고요. 식물의 줄기나 성장하는 과정, 식물 하나가 공간을 채우는 힘을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하나의 존재가 공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고요.
장식적인 타일과 패턴도 좋아해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파리에 가면 다양한 색깔과 무늬가 조합된 패턴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 삶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패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패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장식적인 타일과 패턴도 좋아해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파리에 가면 다양한 색깔과 무늬가 조합된 패턴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 삶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패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패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Q.
최근에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A.
〈신비한 동물 사전〉을 되게 좋아해요. 해리포터 시리즈의 이야기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인물들 간의 관계도 촘촘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요. 함께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보다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더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동화를 만들고 싶어요. 희망과 긍정을 담은 작업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