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Jieun
Intro
아네모네시 이지은
Episode.1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케이크
Episode.2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봤던 초등학생
Episode.3
한정적인 공간을 채우는 작업
Episode.4
첫 케이터링 작업
Episode.5
그달을 통째로 쉬어버렸어요.
Episode.6
전시, 요리 프로그램, 알랭 파사드
Episode.7
이지은의 로피스: 핀셋, 몰입을 위한 도구
Episode.8
작은 선택들이 이끄는 대로
Intro
아네모네시 이지은
차분하면서도 명랑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 아네모네시는 그런 이지은을 꼭 빼닮은 브랜드였다. 아기자기한 초, 비정형적인 도자기 오브제, 자유롭게 붙여 놓은 사진까지, 그는 자신과 닮은 것을 채워 넣고,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더해 가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아네모네시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 알게 된다는 그가 앞으로 발견할 새로운 모습이 궁금하다.
Episode.1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케이크
Q.
아네모네시는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A.
원래 요리를 하는 것도, 친구들을 불러서 대접하는 것도 좋아해요. 친구들에게만 종종 해주다가 우연히 친구가 초대해준 플리마켓에서 제가 만든 요리를 판매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사람들이 제 요리를 좋아해 주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때부터 취미로만 하던 요리로 뭔가 나만의 것을 시도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죠. 플리마켓도 참여하고, 친구네 카페에서 디저트도 만들어서 팔고…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늘어나면서 아트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을지로 근처에 작업실을 열었어요.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Q.
여러 가지 요리 중에서 케이크가 메인이 된 이유도 궁금해요.
A.
원래 친구들 생일에 종종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하곤 했어요. 그때 건너 건너 보셨던 분들이 주문으로 이어졌고요. 그 케이크가 지금 아네모네시의 원형이에요. 다행히도 예상보다 초반 주문이 많아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망원동 작업실로 독립했고요.
Episode.2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봤던 초등학생
Q.
요리는 따로 배우셨나요?
A.
아니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만들고 그랬어요. 특히 EBS 요리 프로그램을 정말 자주 봤어요, 초등학생이었는데. 예전에는 다시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TV에 레시피가 나오면 노트에 막 베껴 쓰기도 하고 그랬어요. (웃음) 어릴 때는 불도 그렇고 위험한 게 많아서 자주 따라해 보진 못했지만, 엄마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셔서 그 영향도 많이 받았죠. 진짜 요리에 맛 들이기 시작했던 건 혼자 살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Q.
그럼 원래 전공은 뭐예요?
A.
일본어를 전공했어요. 1년 정도 일본에 교환학생을 갔는데 작은 일식당에서 일을 했거든요. 마스터가 영업 후에 자주 요리를 만들어 주셨어요. 한국 사람이라고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으셨나 봐요. (웃음) 일식이 되게 매력적이잖아요, 요리도 맛있고. 유학생들은 같은 맨션에 모여 살아서 밤마다 파티를 열고 같이 요리해 먹곤 했는데, 그때 식당에서 배운 걸 선보이고 그랬어요. 요리하고, 베이킹하고, 그걸 같이 나눠 먹고, 그런 게 제 일상이었던 거죠. 어쩌다 보니 덕업일치가 되었네요.
Episode.3 한정적인 공간을 채우는 작업
Q.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A.
우선은 무드를 먼저 생각해요. 발랄한지, 로맨틱한지. 그다음엔 무드에 맞는 꽃을 고르고요. 꽃을 정하고 나면 색감이나 부피감이 어느 정도 잡히거든요. 그러면 마지막에 젤리나 구슬 같은 재료로 디테일을 잡아요. 케이크는 한정적인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다 보니 배열이 중요해서, 자리를 크게 차지하는 재료부터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무드를 맞추면서요.
Q.
일반 케이크에 비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A.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키치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홈메이드 느낌의 독특하고 따뜻한 매력의 디저트를 하고 싶었거든요. 일반 생화 케이크는 꽃이 많이 들어가는데, 저는 여백을 살려서 과일이나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다채로우면서도 어디서 본 적 없는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는 강박감이 좀 있어요.
최근에는 프랑스 제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공부해 보니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나 기법들이 많더라고요. 배우면 배울수록 베이킹이 좋아져요. 케이크 외에 다른 디저트도 해보고 싶고요.
최근에는 프랑스 제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공부해 보니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나 기법들이 많더라고요. 배우면 배울수록 베이킹이 좋아져요. 케이크 외에 다른 디저트도 해보고 싶고요.
Episode.4 첫 케이터링 작업
Q.
지금까지 아네모네시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A.
RP 1주년 케이터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올해 했던 것 중에 가장 힘들고 뿌듯한 작업이었거든요. (웃음) 거의 3일 내내 밤을 새우다시피 했어요. 8~9가지 종류의 디저트를 만들어 갔는데, RP가 워낙 인기 있다 보니 두세 시간 만에 동이 난 거예요. 현장에 상주하면서 계속 다시 만들어서 채워 넣고 그랬어요. 힘들었지만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사람들이랑 소통도 하고, 와인이랑 페어링도 했었고요. 평소에도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차라 좋은 경험이 됐어요.
Q.
현장에 계셨다면 디저트를 먹는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보였겠네요.
A.
맞아요, 그런데 잘 못 보겠더라고요. 혹시 입에 안 맞으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뒤에서 다른 일 하는 척 슬쩍 보거나, 일부러 시선을 피하기도 했어요. (웃음) 그래도 다들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원래는 케이터링 문의가 와도 손이 부족해서 선뜻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RP는 친한 지인이기도 해서 더 편하게 작업했어요. 브랜드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켜본 터라 아이디어도 되게 많았고요. 브랜드의 무드에 맞춰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게 재밌었어요.
Episode.5 그달을 통째로 쉬어버렸어요.
Q.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일 것 같아요.
A.
진짜 힘들어요. (웃음) 보통 주 3일에서 4일 정도 일하는데, 꼭두새벽에 나와서 계속 서 있다 보니 작업 강도도 세고, 몸에도 무리가 많이 가요. 그래서 최근에는 운동도 시작하고, 쉬는 날도 늘렸어요. 몸이 망가지면 멘탈도 무너지고, 그러면 일을 아예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체할 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체력이나 컨디션 관리를 더 신경 쓰는 편이에요.
Q.
힘들었을 때도 있었나요?
A.
망원동 작업실을 만든 직후였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아네모네시를 운영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12월 한 달을 통째로 쉬었어요. 계속 일한다고 해도 일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무조건 쉬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일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베이킹은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엄청 집중해야 하거든요. 작업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져요. 그래서 평소에는 일과 일상을 좀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안 그러면 너무 스트레스가 되니까. 일할 때는 딱 몰입하고 쉴 때는 늘어지고, 균형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베이킹은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엄청 집중해야 하거든요. 작업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져요. 그래서 평소에는 일과 일상을 좀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안 그러면 너무 스트레스가 되니까. 일할 때는 딱 몰입하고 쉴 때는 늘어지고, 균형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Episode.6 전시, 요리 프로그램, 알랭 파사드
Q.
쉴 때는 주로 뭐 하세요?
A.
일단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요. (웃음) 체력이 충전되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전시를 보러 가죠. 전시는 습관적으로 가는 편인데, 편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그러면서 쌓인 경험이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요새는 넷플릭스 요리 프로그램을 많이 봐요. ‘크레이지 딜리셔스’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는데 컨셉이 되게 재밌어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요리 대결을 하는데, 심사위원이 신이라서 흰옷을 입고 나와요. 모든 식재료는 나무에 달려있고요. 에덴동산이거든요. (웃음) 영상미도 좋고, 무엇보다 참신하게 해석한 요리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셰프의 테이블’은 한화에 셰프 한 명의 작업과 인생사를 모두 담아낸 다큐멘터리예요. 개인적으로 프랑스 편의 알랭 파사드 셰프가 인상 깊었어요. 요리에 대한 확신과 순수함을 가진 건 물론이고, 자기 작업을 되게 사랑한다는 게 보였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알랭 파사드의 다이닝을 꼭 가보고 싶어요. 저도 언제나 그런 순수함과 애정을 가지고 요리하는 사람이고 싶고요.
요새는 넷플릭스 요리 프로그램을 많이 봐요. ‘크레이지 딜리셔스’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는데 컨셉이 되게 재밌어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요리 대결을 하는데, 심사위원이 신이라서 흰옷을 입고 나와요. 모든 식재료는 나무에 달려있고요. 에덴동산이거든요. (웃음) 영상미도 좋고, 무엇보다 참신하게 해석한 요리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셰프의 테이블’은 한화에 셰프 한 명의 작업과 인생사를 모두 담아낸 다큐멘터리예요. 개인적으로 프랑스 편의 알랭 파사드 셰프가 인상 깊었어요. 요리에 대한 확신과 순수함을 가진 건 물론이고, 자기 작업을 되게 사랑한다는 게 보였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알랭 파사드의 다이닝을 꼭 가보고 싶어요. 저도 언제나 그런 순수함과 애정을 가지고 요리하는 사람이고 싶고요.
Episode.7 이지은의 로피스: 핀셋, 몰입을 위한 도구
Q.
지은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핀셋을 골랐어요. 제 작업의 가장 디테일한 부분을 맡고 있는 도구거든요. 재료나 꽃잎이 워낙 작다 보니 핀셋이 없으면 작업을 못 해요. 제가 하는 작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제일 집중을 많이 쏟을 때 쓰고 있어요.
Q.
아네모네시의 무드를 만들어주는 도구네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네모네시는 지은 님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케이크도, 작업실도요.
A.
케이크를 만들다 보면 제가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내가 이런 색을 좋아하는구나, 하고요. 그게 참 신기해요. 아네모네시를 운영하기 시작한 최근 2~3년이 제겐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는데, 케이크를 만들면서 비로소 자아를 찾은 느낌이에요. 예전부터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그걸 아네모네시로 해소하고 있는 셈이죠. 가끔은 케이크가 나를 쏟아내어 만든 분신 같아요. 그런 게 신기하고, 재밌고,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Q.
주로 혼자 작업하실 텐데, 작업 환경이 성향과 잘 맞는 편인가요?
A.
너무 잘 맞아요. 일할 때 예민해지는 편이라 누가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요. 함께 일하는 것도 좋지만, 작업할 때만큼은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집중하는 동안은 작업하는 시간이 온전히 제 것인 것 같아서요.
Q.
작업하는 시간이요?
A.
네. 이 핀셋으로 데코할 때는 진짜 집중해서 즐겁게 하거든요.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뿌듯함이 와요. 완성된 걸 픽업까지 보내면 또 다른 작업이 기다리고 있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게 재밌어요. 제가 만든 케이크를 받고 좋아해 주시는 걸 보는 것도 좋고요. 특별한 날 찾아 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그런 게 제가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에요.
Episode.8 작은 선택들이 이끄는 대로
Q.
작업실에 대한 애착도 남다를 것 같아요.
A.
지금도 가끔 여기로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나요. 페인트칠도 하고, 선반도 달고, 작업실 구석구석 제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거든요. 물론 힘든 것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견하고 뭉클해요. 새로운 공간에서 아네모네시를 다시 시작했을 때 비로소 완전히 독립한 기분이었어요.
아쉽지만 내년에는 작업실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팀원도 구할 예정이에요. 지금보다 규모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케이크에 더해 단품 디저트도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손이 더 필요하거든요. 케이터링이나 다른 브랜드와의 콜라보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 같아요.
아쉽지만 내년에는 작업실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팀원도 구할 예정이에요. 지금보다 규모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케이크에 더해 단품 디저트도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손이 더 필요하거든요. 케이터링이나 다른 브랜드와의 콜라보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 같아요.
Q.
기대되네요. 지금 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 게 보여요.
A.
제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렇다고 뭔가를 하겠다는 용기도 없어서 방황을 오래 했거든요. 힘든 시기도 길었고요. 다행히 지금은 그걸 찾았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Q.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뭔가를 시도해보려는 용기를 갖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A.
플리마켓을 나가고, 친구들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고… 그때는 제가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했던 작은 선택들이 저를 자연스럽게 여기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막연했던 생각에 경험을 쌓으면서 점점 구체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