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 Yeojun


Intro

윤여준


Episode.1

어렸을 때 경험한 환상의 세계


Episode.2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Episode.3

윤여준의 로피스: 과거의 물건들, 정체성을 만드는 도구







Intro

윤여준



푸른빛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는 스퀘어 성수 2호점에서 윤여준을 만났다. 윤여준은 디즈니코리아와 CTF 갤러리의 협업을 기념하여 <디즈니 판타지아>를 네온사인 아트피스로 작업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윤여준은 어린 시절 좋아하던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자 느릴지라도 과정에 시간을 잘 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에서 유의미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윤여준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About. 윤여준
빛과 선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네온사인 아티스트. 네온 그래픽과 영상 디자인, 네온 설치 작업을 통해 과거에 경험한 사물과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다.



Episode.1  어렸을 때 경험한 환상의 세계



Q.
이번 전시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요. 디즈니와 CTF 갤러리의 협업 전시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준 님 소장품을 보면 평소에도 디즈니에 관심이 많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
맞아요.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되게 오래 전부터 디즈니를 좋아했어요. 이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읽어 주셨던 동화책인데요, 제가 하도 읽어 달라고 해서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틀어 주실 정도였어요. 전시의 주제가 된 <디즈니 판타지아>는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더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본 작품이기도 해서, 기억을 끄집어 내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Episode.2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Q.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A.
실체화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가, 모니터 속에서 나와 실제로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죠. 제가 미술을 늦게 시작한 편이거든요. 스물한 살에 1년 동안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바로 그래픽 디자인학과로 가서 손보다 컴퓨터로 작업한 시간이 훨씬 길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더 익숙하고 잘하는 디지털 작업보다 손을 쓰는 작업이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네온 그래픽을 만들 때도 실체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며 커뮤니케이션 하는 편이에요.



Q.
네온 사인 작업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때는 어떤 성향이었나요?
A.
작고 유약한 몸, 소심하고 불안한 성격은 물론이고 문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지방 출신, 미술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 금전적으로 여유가 부족했던 상황 등 넘어야 할 퀘스트가 너무 많았던 10대 시절을 보냈어요. 공부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요. (웃음) 신학을 잠시 공부했다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8년 정도 일을 했어요.

스무 살까지는 잘 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성과를 거두거나 인정을 받아본 적도 없었어요. 뒤늦게 디자인 학과에 들어가서 내가 조금이나마 잘 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많이 울었죠. 그래서 30대까지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집착했어요. 칭찬이라는 게 중독성이 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교수님이,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칭찬을 갈구했던 것 같아요. 서른이 넘어서야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좀 늦게 시작한 편이라, 가끔 체력이 달리는 게 느껴져요. (웃음)






Episode.3  윤여준의 로피스: 과거의 물건들, 정체성을 만드는 도구



Q.
여준 님의 로피스는 무엇인가요?
A.
제 로피스는 지금까지 모은 과거의 물건들이에요. 저는 생각이 앞으로 뻗어 나가기보다는 과거로 향하는 편이거든요. 옛날 것을 복원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주로 제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다가 없어진 물건들을 모아요.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이불이나 베개, 동화책 같은 것들…. 그런 물건들이 그때의 저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달으면서 수집하게 됐어요.

또 제가 갖지 못했던 것도 수집해요. 어린 시절 제가 꾸었던 꿈을 지금의 제가 이뤄주는 셈이죠. 일종의 성불이랄까요. (웃음) 어렸을 때 저희 사촌형이 갖고 있던 물건들을 정말 부러워했거든요. 형이 잊어버린 것들도 저는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요. 유튜브에서 ‘미국 만화 오프닝 모음’ 창을 띄워 놓고 좋아했던 만화 영화를 서치하기도 하고, 사촌 형네에서 가지고 놀았던 오래된 장난감을 이베이에서 사오거나, 85년도에 생산된 운동화를 색깔별로 사기도 하고…. 그렇게 모은 물건들은 지금의 제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어요.



Q.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A.
속도요. 저는 먼 미래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만들며 제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때까지 고갈되거나, 혹은 고여서 썩지 않도록 느리더라도 잘 흘러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작이 늦었다고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다가 자빠지는 일 없이, 저만의 속도를 잘 잡고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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